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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옥책 肅宗?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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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숙종옥책 肅宗?冊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경종 즉위년(1720)에 제작한 숙종의 어책이다. 숙종에게 「章文憲武 敬明元孝」라는 존호와 묘호를 올리면서 만들었다. 숙종(1661∼1720)의 휘는 돈(焞)‚ 자는 명보(明普)로 현종(顯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명성왕후(明聖?后) 김씨(金氏)이다. 정비는 인경왕후(仁敬?后) 김씨(金氏)로 김만기(金萬基)의 딸이고‚ 계비는 인현왕후(仁顯?后) 민씨(閔氏)로 민유중(閔維重)의 딸이며‚ 제2계비는 인원왕후(仁元?后) 김씨(金氏)로 김주신(金柱臣)의 딸이다. 조선의 제19대 왕(재위 1674∼1720)으로 현종 8년(1667)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즉위하였다. 100여년간 지속되던 붕당의 원리가 점점 무너지고 있던 상황에서 숙종은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에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환국(換局)조처를 자주 단행하였다. 또한 숙원 장씨(淡媛張氏)를 총애하여 희빈(禧嬪)으로 승격시켰으며‚ 마침내 1690년 인현왕후를 폐하고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폐위를 후회하던 숙종은 서인을 등용하여 갑술환국을 단행하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한편‚ 1701년 장희빈을 무고죄로 사사하였다. 숙종 말년에는 노론 중심으로 일당 전제화가 이루어지면서 숙종의 탕평책은 무의미해졌고‚ 벌열 정치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내적 혼란과 더불어 그 시기에는 전세계적인 이상 기후로 인하여 발생된 기근과 질병의 만연으로 유랑민이 속출하였으며‚ 장길산(張吉山)과 같은 도적들이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횡행하였고‚ 미륵신앙이 유행하여 민심을 현혹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피지배층의 불만을 구원하는 차원에서 대동법의 전국시행과 양전사업의 추진‚ 화폐의 사용 장려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1712년에는 청나라와 협의하여 백두산 기슭에 정계비를 세워 국경선을 확정시켰다. 능은 명릉(明陵)이다. 이 옥책은 14폭으로 되어 있으며 75행에 걸쳐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옥책의 상하단에 당초문이 시문된 유제판을 6개의 정침으로 부착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ogung.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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