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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운 초상 (李昌運 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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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창운 초상 (李昌運 肖像)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초상화란 나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특정 인물을 그린 그림으로 옛날부터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닮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 아래 대상인물을 똑같이 그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인물묘사를 통하여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정신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의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전신(傳神)이 강조되었다. 이는 인물의 외적인 생김새를 본떠 그리는 사형(寫形)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외적인 특질을 뛰어넘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불변의 본질을 나타내야 함을 뜻한다. 초상화는 그려진 대상 인물이나 제작 연유에 따라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 공신들의 초상인 공신상‚ 기로소(耆老所)에 들어선 인물의 입사(入社)를 기념한 기로도상‚ 서원 및 일반 제사용으로 그려진 사대부상‚ 전국 사찰에 봉안된 승려의 초상인 조사상(祖師像)‚ 그리고 여인상 등으로 구분된다. 현재 남아 있는 초상화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후기의 것이다. 이 작품은 이창운(李昌運:1713-1791년)의 초상으로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한 편이다. 이창운은 조선 정조 때의 무신으로 자는 성유(聖兪)이다. 1739년(영조 15) 선전관(宣傳官)으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후에 상원 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1751년 삭주 부사로 승진하였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어 함평군(咸平君)을 습봉(襲封)했다. 정조 때 삼도 수군통제사·포도대장·어영대장·총융사(摠戎使)·도총관(都摠管)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ogung.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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