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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독립운동가 신돌석(申乭石)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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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2012년 11월 독립운동가 신돌석(申乭石) 애국지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2012년 11월 독립운동가 신돌석(申乭石) 애국지사 공적개요 성 명 : 신돌석(申乭石) 선생‚ 영덕 생몰연도 : 1878~1908 주요공적 - 1896년 경북 영해의진 중군장으로 활동 - 1906년 영덕에서 영릉의병장으로 거의 - 1907년 13도 연합의병진의 교남의병 대장 - 1908년 평해 등지에서 일군 격파 훈 격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년) 공적요약서 공적상세설명 포토갤러리 공적요약서 신돌석 의병장은 힘과 날랜 인물의 대표로‚ 그래서 ‘신돌석 장군’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를 추적했던 일본군도 신돌석 부대의 기동력에 고개를 가로 저었을 정도다. 그는 1878년 경북 영덕군 병곡면 도곡동‚ ‘복더미’라 불리는 복평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태호(泰鎬)였는데‚ 신돌석이란 이름은 어릴 때 불린 아명(兒名)이다. 그는 꼭 30년을 살았다. 열여덟 살이던 1896년에 이미 전기의병에 참가했다고 알려지는데‚ 구체적인 정황은 알 길이 없다. 그가 확실하게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시기는 만 28세이던 1906년 4월(양력)부터 1908년 12월까지 2년 8개월이었다. 신돌석은 4월 6일 자기 마을 앞 주점에서 200~300명 병사를 집결시키고‚ 의병을 일으켰다. 상원마을 앞의 개천가 숲에서 훈련을 시작했고‚ 고래산 중턱에서 군사훈련을 펼쳤다. 그리고 조직을 갖추어 갔다. 눈에 두드러진 사실은 그의 아래에 양반이나 중인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병 직후 첫 단계 작전은 병력과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영해부의 속현이었던 영양과 진보가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대상지역이 되었다. 그가 거느린 부대는 대개 300명에서 500명 정도라고 알려진다. 무기와 화약은 관아의 무기고에서 확보했다. 무기는 화승총이 주류였으며‚ 적은 수이지만 양총도 갖고 있었다. 화약과 탄알을 만드는 필요한 납을 확보하기 위해 그물추를 활용하였다. 식량과 의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유력한 문중과 인물들의 도움도 받았다. 일반 평민들이 가진 것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보상하였다. 신돌석부대의 작전 형태는 영양과 청송에서 자원을 확보한 뒤에 울진과 삼척을 공격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울진이 공략대상이 된 이유는 1890년대부터 그곳에 일본의 어업과 수산업 전초기지가 마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진과 삼척의 일본 전초기지를 모두 여섯 차례나 공격하였다. 그때 우편국취급소를 공격하여 일본인을 내쫓고 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삼척 장호동에 설치된 일본 전초기지를 세 차례나 공격하였다. 그러자 일본군은 신돌석부대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신돌석부대는 거듭된 공격을 놀라운 기동력으로 따돌렸다. 일본군이 6개의 소규모 부대로 그물 치듯 ‘생포작전’을 펼쳤지만‚ 이것마저도 실패하였다. 신돌석 부대의 구성원은 평민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양반도 있고 참봉이나 주사도 있었다. 철저한 계급사회가 극복되어 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의병들이 보내는 절대적 지지는 신돌석의병장에 대한 믿음에서 드러난다. 1908년 12월에 들어 그는 만주로 가려고 준비했다. 그러다가 12월 12일(양력) 새벽 1시에 영덕군 지품면 누르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살해범은 외가 집안 쪽으로 6촌이 되는 김상렬 형제다.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던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면서 신돌석의병장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이 이끈 의병부대가 일월산과 백암산을 근거지로 의병부대의 규모를 강화하며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 글은 짧으면서도 한 마디 틀림이 없고 또 덧붙일 것도 없는‚ 완벽한 표현에 가깝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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