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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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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검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검군 활동시기 : 삼국시대 상세설명 검군은 신라 진평왕 때 사람이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구문(仇文이)라고 했으며 관등은 대사(?舍)였다. 검군은 사량궁의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 있었다. 성실한 젊은이였으며 의리를 존중하고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대장부의 도리라고 항상 자기 자신에 타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627년(진평왕 49년)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 나무 뿌리를 캐어 먹고 풀잎을 뜯어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자식을 노예로 팔아 얼마간의 곡식을 마련할 정도였으니 그 참혹한 형편을 짐작할만하다. 하급 관리들에 불과한 사냥꾼의 사인들도 이러한 비참한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그들은 함께 모의하여 곡식을 간직해둔 창고를 열어 그것을 나누어 먹기로 했다. 그러나 검군은 이 곡식을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들이 검군을 찾아 가서 곡식을 받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여러 사인들이 다 곡식을 나눠 먹었는데 그대만 홀로 이것을 거절하다니 무슨 까닭이냐? 만약 곡식이 적어서 그렇다면 더 주겠네." 하고 행동을 같이 해 주기를 거듭 부탁했다. 그러나 검군은‚ "나는 근랑의 낭도로서 화랑의 대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의리에 어긋난다면 비록 천금의 이(利)가 있어도 거기에 따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대들의 일을 탓하지는 않겠으니 나에게는 마음 쓸 필요가 없네." 하고 끝내 거절했다. 여러 사인들은 검군의 단호한 태도에 불안을 느꼈다. "자 이것 야단났지 않은가! 반드시 고발할 것이니 모두들 무슨 대책을 세우자꾸나." 사인들은 이마를 맞대고 수의한 끝에‚ "별 도리가 있을 수 있나? 검군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은 사실이 폭로되어 우리 모두들 화를 당할 것은 뻔하지 않는가!" 이래서 그들은 검군을 죽일 것에 의견을 모으고 검군을 대접하는 체 하고 그를 초청했다. 검군은 여러 사인들의 제안을 거절할 때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군은 사인들과 헤어지자 곧 화랑인 근랑을 만나러 갔다. 영원의 작별이니 인사라도 하고 떠나야겠다는 심정에서였다. "화랑님 오늘 이후에는 다시는 만나 뵈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작별인사라도 드릴려고 찾아 왔습니다." 근랑이 놀라서 그 까닭을 물었다. 검군은 사유를 밝히지 않고 다만 떠나기만 청했다. 더욱 이상하게 여긴 근랑이 거듭 다구쳐 묻자 하는 수 없이 사실을 말하고 그들이 초청하는 이유를 말했다. 듣고 있던 근랑은 하도 기가 차서 말했다. "여보게 검군‚ 이것 무슨 어리석은 생각이냐. 그대를 죽일 모의를 했음을 알고도 죽기 위해서 그 자리에 가다니.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 두고 관청에 가서 당장 고발하도록 해야지." 하고 검군을 그 자리에 못가게 했다. 그러나 검군은 말하기를‚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온 친구들입니다. 내 하나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그들을 고발하는 그런 의리에 어긋나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사악한 그들의 마음에 뉘우침이 생기고 그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 주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검군은 태연하게 독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는 조용히 죽었다. 이것을 즉 태산보다 더 무겁게 여겨야 할 목숨은 나라를 위한 큰 일에 바쳐야 할 것이지 그런 일에 버린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검군은 성인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화랑의 낭도로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대장부로서의 길을 닦는 젊은이에 불가하다. 그런 젊은이 바라보는 사인들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인간다운 마음이 다소라도 남아 있었다면 눈물이 있었을 것이고 눈물이 있었다면 뉘우침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분은 검군의 죽음을 평해서 말하기를‚ "검군의 죽음은 장소를 가리지 못하였으니 비교해서 말한다면 태산을 새털보다도 가벼히 한 것이다." 라고 했다. 게다가 내 목숨 하나 버리고 많은 동료로의 마음에 의로움을 깨닫게 하고자 했으니 역시 갸륵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젊은이가 많이 있었던 신라는 역시 자랑스러운 시대였고‚ 통일의 주인공이 되었는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였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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