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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남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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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남응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남응원 호 : 현언/난재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영양 출생시기 : 1539 상세설명 남응원(1539~1661) 선생은 영양인으로서 자는 인중이며 호는 허영정이다. 선생은 효성이 극진하여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6년동안이나 시묘를 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져 선조 13년(1580)에 여강서원등 고장 사림의 천장으로 감사 유흥‚ 정지연 등이 차례로 공의 효성과 행검을 조정에 알려 임금이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숙종 원년 (1575)에 정려가 내리고‚ 숙종 5년 통훈대부사복시정에 증직되었으며 영조 18년 사림에서 봉암사에 제향하였다. 배향인 남융달(1565~1652) 선생은 영양인으로서 자는 현언이며 호는 난재로 남응원의 아들이다. 공은 일찍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 실패하여 한창 나이에 과거공부를 버리고 자질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영양남씨 족보를 처음 편찬하였다. 부모 상사에 3년을 여묘했으며 노인 우대의 특전으로 통정대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되었다. 남급(1592~1671) 선생은 영양인으로서 자는 탁부이며 호는 유유헌으로 난재고의 아들이다. 인조 2년(1624) 사마시에 합격‚ 동왕 8년‚ 학문으로 천거되어 참봉을 역임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사옹원봉사의 신분으로 왕을 호종하면서 정황을 소상히 적은 <<병자일기>>를 남겼다. 효종 3년(1652)‚ 의흥현감에 임명‚ 현종 12년 수직으로 정삼품에 이르렀다. 숙종 17년 (1691)에 남한산성에 호종한 공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남천한(1607~1668) 선생은 영양인으로서 자는 장우이며 호는 공암으로 난재공의 손자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 동왕 24년(1646)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사헌부지평 을 거쳐 현풍현감‚ 청도군수를 지냈다. 숙종 때에 공조참의를 지낸 뒤 임천에 마음을 붙여 조정의 부름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공은 시비사정을 가리는데는 의연하고 당당했지만‚ 온화한 성품에 성실 겸허하여 사람을 대함에 귀천을 가림이 없었으며‚ 깨끗한 인품 뚜렷한 조해으로 아는 이들이 정송경죽에 견주기도 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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