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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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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강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박강 활동시기 : 미상 상세설명 박 강은 영해부 출신이다. 대대로 본부의 아전 노릇을 해왔다. 영해는 곧 옛적의 덕원도호부였는데‚ 동여진이 들어와서 침략할 때에 성이 함락되었기 때문에 격을 낮추어 지관으로 만들고 관할하던 보성은 복주에 귀속시키게 되어‚ 온 성이 이를 수치로 여기면서도 이를 다시 찾으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때 박강의 증조인 성절이 마침내 상계리가 되어 서울에 가서 드디어 도당에 진정하여 임금께 보고하니 올려서 예주목으로 만들고‚ 다시 보성을 복귀시키고 주목의 도장을 주조하여 내려보냈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곧 그 도장이다. 주의 인사로서 조정에 올라가서 벼슬하는 사람이나 시골에 있는 사람이 모두 성절에게 공적을 돌리어 그에게 아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려하니‚ 성절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늙었으니 비록 나의 복무를 면제한다 할지라도 다시 양반 노릇은 못할 것이니‚ 나의 자손이나 면제하여 달라."하였다. 여러 사람은 모두‚ "그렇다"하고‚ 증명을 써서 주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인 학여의 손자인 천부는 모두 고을에서 아전 노릇을 하지 않았다. 천부는 곧 강의 아버지이다. 지정 신축년에 홍건적이 경성을 함락하고 현릉이 안동에 행차하여 군대를 보내어 수복할 때에 강이 처음으로 군에 응모하여 총병관인 정세운을 따랐다. 전투가 시작되려 할 때에 적이 성중에게 목채를 쌓아 올리어 항전하므로 모든 군대가 전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박강은 곧 말에서 내리어 어떤 집에 들어와서 판자로 만든 대문짝을 얻어가지고 메고 나아가서 사닥다리를 만들어 올라가며‚ 칼을 뽑아 크게 고함을 치니 목채 위에 올라있던 적들이 모두 무서워 땅에 떨어져서 저희들끼리 서로 짓밟혔다. 박강은 따라 내려와서 수십 명을 마구 무찌르고 여러 군대가 계속 전진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적의 괴수인 사유를 베었다. 이로 말미암아 싸움은 크게 이겼는데‚ 총병관은 이를 장렬히 여기어 계급을 특진시키고‚ 상을 주어 중랑으로 진급시키기 위하여 명부에 올려 두었었는데‚ 바로 세 원수가 총병관을 죽였다. 이로 인하여 진급시키려던 것도 되지못하고 마침내 산원에 임명되었다. 계묘년에 원수인 박춘을 따라 이성에 가서 두 번이나 강을 건너 탐정하였다. 그 공로로 별장에 임명되었다. 이 때에 반란을 일으킨 신하인 최유가 왕실의 사자로서 일찍 중이 됐던 자를 세워서 임금을 삼아가지고 변경을 침입하여 수주를 함락하였다. 여러 장군이 항전하여 물리쳤는데 박강이 선봉이 되어 그들을 추격하여 압록강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또 낭장에 승진되었다. 을사에 임금은 박강이 용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한 그의 아버지가 자기를 업으며 이끌고 다니던 공로를 생각하여 그를 불러보고 시위한 군사로서 힘이 센 자와 씨름을 붙여 보았더니 군사들이 모조리 넘어졌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국고의 쌀을 내리고 바로 중량장에 임명하여 임금을 시위하는 부대에 소속시켰다. 정미년에 왜적이 서강을 침범하여 나진 등을 보내어 바다에 나아가 추격하여 잡기를 명하고 강도 함께 가게 하면서 철갑과 활과 칼을 주었는데‚ 왜를 만나 여러번 이겼다. 홍무 신해년 가을에‚ 원수인 이희필을 도와 울라산에 가서 공격할 때에도 임금은 또 말을 주어서 보냈다. 성을 공격하여 먼저 올라가서 그 괴수를 잡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또 사재소감에 임명되었고‚ 여러번 옮겨서 예의총랑에 이르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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