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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박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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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한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박한진 호 : 자원/만고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선생은 조선 말엽의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남들이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의술을 스스로 연구하여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며 어려운 환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찾아가서 돌보아줌으로써 널리 인술을 베풀었다. 자는 자원‚ 호는 만고‚ 본관은 밀양‚ 1815년(조선 순조 15년)에 농부였던 박재경의 아들로 봉성면 원둔리에서 태어났다. 12살 되던 해 부친이 병으로 눕게 되어 여러 의원을 찾아보고‚ 여러 약을 써 봤으나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거리가 먼 곳을 구분할 겨를 없이 이름난 의원을 찾아서 헤맨 결과 의원마다 병명이 각자 틀리고 처방하여 주는 약도 서로 다른 것을 경험하였다. 어린 선생은 이 세상에서 믿고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의술을 익혀 효도를 다 할 것이며 아울러 괴로워하는 모든 환자들을 위하여 힘껏 돌보아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공부하던 경전을 의학서적으로 바꾸고 의학입문‚ 동의보감‚ 황기문답‚ 침구단방 등 모든 의학서적을 한권 한권 익혀 나갔다. 그러다가 16세 되던해 어머니를 여의고 22세에는 부친마저 세상을 떴다. 이와같은 괴로움이 의학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후일 명의로 대성하게 되었다. 조선 고종 12년 선생의 나이 61세 때였다. 조대비가 부장증으로 오래도록 신음하고 있을 때 조대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선생이 진찰한 결과 부종증으로 진단하고 치료하였다. 그결과 조대비의 병은 기적같이 나았으며 선생의 명성은 전국에 전파되었다. 벼슬을 제수하려는 것을 사양하는 선생의 마음에 감동한 고종은 "의술도 뛰어나지만 의리또한 높다."고 하며 '5고'의 호를 내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살던 저택에 '만리정'‚ '오고거'의 현판을 걸고 전과 같이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였다. 1893년(고종 30년) 79세를 일기로 많은 지인들의 애도 속에서 세상을 떴다. 참고문헌 : 오고선생전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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