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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박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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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홍장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박홍장 호 : 사임/농아당 활동시기 : 조선시대 출생시기 : 1558년 상세설명 무안인 영일 현감 세렴의 둘째 아들로 1558년 8월 1일 영해면 원구동에서 태어나셨다. 자는 사임이요 호는 농아당이라 했다. 타고난 소질이 총명하고 고상하였으며 모양은 장대하고 마음은 넓고 기상은 엄숙하고 말은 적었다. 젊었을 때 상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큰 장군이 될 사람이라 하였다. 일찍이 제주판관으로 갔을 때는 제주라는 곳이 진기한 보물이 많기로 유명하였지만 한번 묻는 일도 없었고 낮으로는 활쏘기에 전념하고 밤으로는 글을 읽어서 병서와 사기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항상 소학을 즐겨 읽으면서 「이 글은 아버지나 임금이 주는 글이라」하였다. 서울에 있는 왕자 한 사람이 종을 보내서 제주에서 말을 사 모으는데 백성들을 억눌러서 피해가 많으나 관에서도 금하지 못하고 있거늘 공이 법으로 다스려서 조금도 사정이 없으니 모두를 놀라서 앞으로 화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더니 마침내 무사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서도 국사가 위급하여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고 슬픔에 못 이기어 병이 났더니 특명을 얻어서 돌아오다가 해남에 와서 영암 군수로 임명이 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부임한 지 두 달이 못되어서 정부에서 대구가 영남의 요충지대니 공을 부사로 보내라 하여 또 대구로 왔다. 서예 유선생이 장계를 올려서 말하되 「새로 보낸 부사 박홍장은 경주 부윤 박의장의 아우인데 무장 중에서도 가장 명망이 높은 사람이니 딴 일은 시키지 말고 지방 보호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니라」하였다. 하루는 청정이가 땅바닥에 숯불을 피우고 사람을 시켜 말하되 「사신을 숯불 위에 앉히겠다.」하거늘 공이 답하는 말이 「나는 옷을 벗고 앉겠노라」하였다. 수행원이 앞에 와서 말하되 「불태워 죽이는 형벌이 경각에 달렸으니 어찌 하렵니까」하고 흐느껴 우는지라 공이 성을 내서 꾸짖되 「국서를 전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죽는 것이 두려우냐」하고 끌어내어 매를 치니 왜인들이 보고 다 겁을 내더라.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지라 왜장들이 무슨 재앙이라도 받을까 하여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공이 대구 있을 때부터 과로로써 몸이 약해졌더니 일본을 다녀온 뒤로는 병이 점점 심하였다. 대구에서 집으로 돌아가서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인망이 바야흐로 높아질 무렵에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니 원근 사람들이 다들 슬퍼하여 나라의 불행이라 하였다. 제주도에 있기를 6년 대구에 5년 동안이나 혜택이 흡족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부모같이 여기었고 비를 세워서 그 덕을 송축하였다. 돌아가신 뒤에는 마판에 말 세 필이 있고 장에는 활과 살 두어 상자가 있을 뿐이요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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