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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백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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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백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백렴 호 : 중영/동화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1605년(선조 38년) 자인면 신관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영‚ 호는 동화라고 하였다.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백인관의 10세손이다. 어려서부터 담략과 씩씩한 기개를 가졌다. 1632년(인조 10년)‚ 당시 자인이 경주부의 속현이므로 행정면의 불편‚ 경주부 이속의 횡포 등에 시달림이 많았으므로‚ 고려 현종 이전과 같이 자인현이 독립할 것을 향인 간에서 숙의한 끝에 재종숙 백현룡의 승낙으로 유생을 대표하여 백렴이 단독으로 자인현 복설의 솟장을 들고 3일만에 달려서 상경하였다. 그때의 나이가 약관 28세이었다. 경주부윤의 지탄을 무릅쓰고 최초의 항의와 건의를 위한 진정이니 그의 늠름한 기상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 조정에서 윤허가 있어 경상도 감사에게 실정을 조사하여 올리라고 명하였는데‚ 감사가 자인현의 억울한 실정을 올리기 전에 경주부윤이 백렴이 허위 사실을 꾸며서 백가지를 속인다고 상주하였으므로 뜻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병자 호란에 마침 백현룡이 상소를 위하여 상경중이었는데 오랑캐의 침입을 알리어 자인 유생이 창의하였다. 백렴도 물론 의거에 가담하여 급거 남한산성에 달려 갔으나 강화가 이루어졌으므로 돌아왔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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