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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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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사공정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사공정 호 : 성집/매원 활동시기 : 조선시대 출생시기 : 1510년(중종 5년) 상세설명 사공 정(司空 精)공은 자를 성집(聖執) 호를 매원(梅園)이라 하였다. 1510년(중종 5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선조는 897년(신라 효공왕 1년) 팔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서 건너온 사공 도(圖)공이다. 그 후의 계보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충숙왕(忠肅?)때 천성급제(?城及第)를 하여 판의시사(判儀侍事)를 지내고 말년에 효령군(孝令君 : 그 당시는 현재의 효령면이 효령부(府)로 되어 있었음)으로 제수된 사공 중상(仲常)공의 7대 손이다. 그의 5대조인 민공은 인물이 출중하여 고려조의 사복소윤(司僕少尹) 벼슬을 받은 후 여러 벼슬을 거쳐 후에 시중에까지 이르렀으나 당시에 성군을 숙청하고 조선을 건국할 때 사공 민(敏)공이 최영 장군의 사위라는 관계로 정계에서 밀려났다. 그뿐 아니라 신변의 위험마저 느껴 개성(開城)에 있을 수 없어 군위면 외량동(속칭 송현)으로 피신하여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정치적 핍박을 받은 사공 민의 후손들은 100여 년간에 걸쳐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공 정은 효령현 노매실(현 효령면 노행1동)에 택리(擇里)를 하여 문벌재흥의 큰 꿈을 안고 강학(講學)과 구도(求道)에 힘쓰는 한편 자손들에게 효행의 도리를 실천하며 가르쳤다.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살아 생전 부모님 섬기기를 지성껏 하였음은 물론 부모상(喪)을 당해서는 6년간을 하루같이 여막에서 시묘를 하여 향리(鄕里)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향림(鄕林)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매원공의 효행을 조정에 천거한 결과 기자전참봉(箕子殿參?) 벼슬이 특제(特除)되었으나 "배운바 넉넉지 못한 자가 벼슬이라니! 당치도 않는 일이다."고 사양하였다 한다. 공은 은거생활을 하면서도 이 퇴계 기고봉(套高峯) 신만오(申晩梧) 장유헌(張遊軒) 이효암(李曉庵) 류필영(柳必永)선생등 인근의 학자들과 교유(交遊)하여 학문과 덕행이 더욱 고매 해졌고 1566년(명종 21년) 56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나자 이 퇴계 선생이 장학을 하셨고 기고봉선생이 비문(碑文)을 지어 신도비(神道碑)를 세워 주기도 했으며 그 외 많은 분들이 공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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