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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송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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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송준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송준필 호 : 순좌/공산 활동시기 : 근대이후 상세설명 자는 순좌‚ 호는 공산‚ 본관은 야로‚ 구‚ 희규의 후손‚ 대선의 아들‚ 초전면 고산동 출신이다. 천품이 온수하고 기국과인하며‚ 사미헌 장복추‚ 서산 김흥락의 제자이다. 관향은 야성이요 자는 순좌‚ 호는 공산이시다. 영남의 대학자로서 600여명의 문인이 있다. 37살 때 을사망국의 가슴 아픈 한을 맛보시고 의연히 만주로 건너가시어 구국운동의 행동대원으로 활약하셨다. 그 후 기미 3·1독립운동이 전국에 메아리치자 한국유림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의 유림들은 이를 앉아서 볼 수 없었다. 충효를 인륜의 길잡이로 삼고 있는 그들은 마침내 선생으로 하여금 분연히 궐기하시게 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니 이것이 곧 "파리 장서사건" 일명 '경북유림단사건' 이다. 이 사건을 당시 경북경찰국에서는 유림대표의 '독립청원사건'이라 이름하여 조선총독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극비의 보고서는 동사건 관계자를 분명히 하는 대목에서 거창의 곽종석 칠곡의 장석영 그리고 성주의 송준필 김창숙 등 20여명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파리장서'란 1차대전 후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 제창으로 온 세계가 들끓고 있을 때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왜적에게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회복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 글이다. 이 글은 모두 1500자 한문으로 된 청원서로 선생과 곽종석 두분이 기초하였으며‚ 김창숙 선생을 상해로 파견하여 전달하게 함과 동시에 그 장엄한 뜻을 동포에게 알리는 '국내통고문'도 또한 선생이 기초하셨다. "오호라 사생은 천야라 국복즉 사 생야요‚ 국미복즉 생 역 사야라…"는 첫머리로 약 200자에 이르는 격문(급히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고 각 곳에 보내는 글) 3000장을 선생의 셋째 아들 수근을 통해 널리 돌렸던 것이다. 위 국내 통고문을 풀이해 보면 "오호라 슬프도다. 죽고 삶은 하늘에 매였도다. 이 나라의 빼앗긴 주권을 다시 회복하면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요‚ 이 나라의 광복을 되찾지 못하면 곧 살아있어도 죽음고 같으니라…" 그리고 기미 3월 2일 성주 장날을 기하여 궐기했던 독립만세 시위운동도 유림에서 존경받던 선생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주동한 항일(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던 일) 투쟁이었다. 선생은 파리 장서사건과 성주 만세운동을 주모했다는 이유로 1년 6개월의 감옥살이를 치르고‚ 출옥 후에는 현재의 김천시 부곡동 원골에 있는 원계서원에서 사회적 활동을 피하고 숨어서 사시다가 향년 74세를 1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세 선생의 육신은 가셨지만 나라의 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거짓이 없는 높으신 정신은 영원히 우리 민족사에 살아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1963년 3·1절에 나라에서 선생께 독립운동의 공적을 표창하였다. 무덤은 초전면 고산동 봉암에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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