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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신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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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필정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신필정 호 : 병옹‚홍정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평산 상세설명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병옹(病翁) 또는 홍정(鴻亭)이라고 하며 좌승지를 지낸 상철(尙哲)의 증손이다. 어려서부터 준수한 얼굴과 뛰어난 재주와 지혜로 향리에 이름이 높았으며‚ 장성하여 철학(哲學)에 잠심하여 이수(理數)를 탐구하고 현모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한적한 곳을 찾아 문경 정곡(井谷 : 현 마원리)의 층벽 위에 삼간 초옥을 지으니 이가 곧 비홍정(飛鴻亭)이다. 맏형인 필성(弼成)과 더불어 날로 학문을 닦아 위로는 별의 변동을 살피고 아래로는 조천(潮泉)의 흐름을 감상하며 우주와 대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니 자연히 당파(黨?)에서는 멀어져 정적(政敵)이 없으므로 순무사(巡撫使) 이규령(李?齡)‚ 한태동(韓泰東)‚ 경상감사 이세재(李世載)‚ 유명홍(兪命弘)‚ 암행어사 여광주(呂光周)‚ 윤필주(尹必周)‚ 유의정 민정중(閔鼎重)‚ 박세채(朴世采)등 노소남북(老少南北)의 정치인들이 말하기를 신필정은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여 여러번의 제명을 받지 아니하고 산림에 숨어 살며 경적(經籍)에 잠심(潛心)하여 한 도(道)의 선비가 추앙하는 인물이라고 서로 주창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1728년(영조 4년) 정희량(鄭希亮)과 이인좌(李麟佐)가 역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병중 아들 사일(?日) 의병을 일으켜 고모산성(?母山城)에서 진을 치고 적세를 막았는데 어사 및 순무사 이종성(李宗城)이 친히 찾아와 문병하며 의병으로써 방어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그후 경릉(敬陵) 및 후릉(厚陵) 참봉(參?)과 황산도 찰방(察訪)‚ 장흥고 주부(主簿)를 제명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선유동(仙遊?) 수석을 좋아하며 옥하대 위에 두어칸 정자를 짓고 산수를 벗하여 경서와 더불어 일생을 보냈다. 저서로는 훈몽역의(訓蒙易義) 20권을 10책이 간행되었으며 죽은 뒤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에 증직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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