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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안강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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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안강노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안강노씨 활동시기 : 조선시대 출생시기 : 1761년 상세설명 조선 영조 때 안계면 토매동 가마골서 경엽의 딸로 태어난 안강 노씨는 일찌기 정주국에게 출가했다. 남편은 관향이 영일(迎日)‚ 그 의성 입향 시조인 성균관 학유를 지낸 휘의 8세손이 된다. 노씨는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나이 어린 시동생 둘의 어리광을 달래 가며 집안 일을 잘 보살펴 왔다. 남편이 불행히도 득병하여 자리에 눕자 그 병 간호하느라 매일 뜬 눈으로 날을 지새면서도 항상 시어른의 뜻에 좇아 가사를 돌보아 남편이 하던 고된 일까지 대신하여 가며 어려운 가계를 꾸렸다. 지극한 간병의 보람도 없이 그가 19세 되던 1779년(정조 3년) 기해 9월 1일에 남편이 21세로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 그 묘소 옆에 여막을 지어 시묘 살이를 사작‚ 집안에서 모두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시묘 사는 것이 애처로와 차마 볼 수 없다며 간곡히 말렸으나 남편에 대한 애끊는 마음은 돌이키지 못하였다. 3년간 세수는 물론 손‚ 발톱까지 깍지 않고 여막에서 조석전을 조금도 소홀함 없이 항상 올렸고 항상 전을 드린 뒤 밥그릇의 무게를 달아보고 운감을 하였는지 여부를 확인‚ 밥그릇 무게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면 운감치 않았다고 여기곤 그 원인을 조사해 보았다. 그러면 반드시 머리카락‚ 뉘‚ 돌 등이 들어 있었다는데 그 지극한 정성에 남편 혼령이 정말 운감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정성스레 3년상을 치루고 나서 파제날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약을 마시고 남편의 뒤를 따르니 신축인 9월 1일의 일이다. 생전에 잘 받들지 못했고 슬하에 일점 혈육없이 간 남편을 저승에 가서 잘 보살피겠다고 자결한데 감동한 군민들의 성원에 의해 '열녀각'이 세워져 그의 만고의 드문 정렬을 후세에 길이 알리고 있다. 안계면 위양동 산기슭에 정려각이 서 있고 비안현감 이병원이 기문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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