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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안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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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안처택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안처택 호 : 인백/동오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자는 인백(仁伯) 호는 동오(桐塢) 관향은 순흥(順興) 회헌 안향(?軒 安?)의 후손 학송재 안 우곤(鶴松齋 安遇坤)의 9세손이며 현 화북면 오동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총명하며 용모가 단정하고 학문에 전념 깊이 파고 들어 끝까지 밝혀내는 성격이며 학문은 자기의 마음가짐에서 이룩됨을 깨달았다 한다. 양수 정 만양. 규양(兩受 鄭萬陽 葵陽)의 문인이 되어‚ 같은 문인이며 향내의 명사였던 매산 정 중기(梅山 鄭重器) 명고 정 만양.. 규양(鳴皐 鄭萬陽 葵陽)과 서로 학문을 갈고 닦았으며 북계 조 용석(北溪曺龍錫)과는 같은 고장‚ 같은 스승‚ 같은 나이로 더욱 절친했다. 그는 한때 용문의 뜻을 펴 보려 했으나 연이은 부모상을 당하고 나니 기뻐해줄 부모가 없음을 탄식하고 과거시험에 나가지 않고 동오당(桐塢堂)을 짓고 후진 양성과 학문 여구에 진력학 된다. 선비의 집은 가난함이 예사‚ 그의 집 또한 가난했다. 양식이 떨어질 때를 대비 조상 제수용 곡식은 별도로 저장 하였고 정성으로 제사를 모시며 성묘하고 돌아올 때마다 집안 이웃사람 들에게 부모에 효도 형제간에 우애 이웃끼리 돈목하게 지내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저술한 많은 서적을 전란으로 거의 잃어버리고 남은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 동오당(桐塢堂)이다. 묘소는 노방에 있고 아들 안 국신 또한 선비로 명망이 높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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