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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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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약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약가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약가는 야은 길재선생과 같은 시대에 한 마을 (고아 봉한동)에서 자란 여인이다. 어릴 때 야은 선생에게 "책속에 무슨 말이 있는고?"하고 물으니 야은선생이 대답하기를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열녀(烈?)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느다"라고 대답하니 마음속에 감동한 바가 있었다. 약가는 곱게 자란 후에 조을생(趙乙生)에게 시집을 가니 여자로서의 본분을 다함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그러나‚ 나라 안팎이 심히 어지러워 왜구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았으니‚ 낙동강을 따라 이곳까지 올라온 왜구들은 마을에 불을 지로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제 참다 못한 조을생은 스스로 군인이 되어 나가 싸우다가 그만 왜궁게 사로 잡혀 가고 말았다. 약가는 그날부터 고기를 먹지 않으며 또한 옷을 벗지 않고 일편단심 오직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천지시명께 기도하여 정성을 다하였으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부모를 "조을생은 이미 왜놈에게 끌려가 죽었으니 다시 딴곳으로 시집을 가라"고 강력히 권했으나 약가의 굳은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8년을 하루같이 문고리를 굳게 잠그고 외롭게 지내왔다. 이와 같은 정성의 감동인지 어느날 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약가는 깜짝 놀라 누구냐고 물으니 남편 조을생은 "내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으나 약가는 문을 열어 주지 않고 혹시나 불량배들의 장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우리 부부가 8년간이나 서로 헤어져 살았으니 이 밤중에 만나기 보다는 내일 아침 밝은 날에 만나자"하며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조을생은 하는수 없이 대문간에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고 동네 사람들이 일어남을 기다려서야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기다리는 남편이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라에서는 조선 태종(?宗) 4년(1404) 열녀(烈?)로 표창을 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으로 삼으니 많은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바다 건너 잡혀간 남편 소식 없고‚ 규중세월 청춘도 멀고 또 멀어‚ 곧고 맑은 팔년간의 지조 비석되어 봉산에 섰네. 정조(正祖) 19년(1795) 부사 이 채(李采)가 집을 지어 삼강정려각(三綱旌閭閣)이라 하였으며 충신 야은‚ 효자 배숙기의 정려비가 함께 고아 봉한동에 있다. 참고문헌 : 삼강행실록‚ 일선지‚ 교남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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