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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열부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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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열부강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열부강씨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열부 강씨는 진주 강씨로 증 이조판서 화순 최자강의 아내요 절의 선문의 어머니다. 열부 강씨는 남편이 중부령으로 있다가 37세에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된 이후 남편의 뜻을 좇는 일은 자식을 훌륭히 키우는 일이 다고 온갖 괴로움과 슬픔을 참고‚ 시부모께는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고 아들에겐 엄하고도 바르게 훈도 하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라 손가락질을 당해선 안 된다." "남자에게 의리를 빼면 허수아비와 같다." 고 훈계하여 기르기 13년 드디어 남편은 죄가 풀려 고향 하로로 오게 되었다고 기별이 왔다. 놀랍고 반가운 소식에 온 집안이 들떠있는 바로 그때‚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병고에 시달린 몸이라 남원에 이르러 병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들 하나를 의지해 13년 참아온 고난과 기대의 보람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갔다. 남편께로 달려간 열부 강씨는 절통한 나머지‚ "이제라도 남편을 따르지 않으면 어찌 남의 아내라 하랴!" 하고 남편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하기 7일‚ 살이 썩어 엉켰으며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뼈만 남아 숨졌다 한다. 이 열부의 거룩한 죽음은 아들 선문에게 미치어 절의를 지켜 청사에 길이 남는 충신이 되게 했으며‚ 손자 다섯이 다 문과 무과에 급제하여 하나같이 나라의 대들보가 되었으니 다 열부 강씨의 끼친 바 영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라에서 그 정렬을 가상히 여겨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비는 현재 감천면 하로에 섰다. 또한 부인의 사적은 <속삼강열녀전(續三鋼烈?傳)>·<여지승람(與地勝覽)>에도 기록되어 오늘날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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