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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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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월명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월명사 활동시기 : 삼국시대 상세설명 신라가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것은 군사력이 강했다는 점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훌륭한 나라를 건설할 수는 없다. 신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고 그 찬란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라인들이 참다운「멋」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꽃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화랑들을 보라! 이름 그대로「꽃다운 서방님」들이다. 문과 무를 함께 갖추고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생사를 초월한 여유를 가졌다. 화랑들의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멋」을 가지고 있었는데 있다. 그래서 화랑도를 신선 또는 풍유도라고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명사는 신라가 통일되고 문화가 전성시대에 들어가는 35대 경덕왕 때의 사람이다.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스님이였던 능준대사(能俊?師)의 문인이었으며 사천왕사(四??寺)에 살고 있었다. 본명이 무엇이였는지는 전하지 않고 월명사라고만 알려졌다. 그가 월명사라고 불리게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피리의 명수였는데 달밝은 밤에 피리를 불고 사천왕사의 앞길을 지나가면 하늘의 달도 걸음을 멈추고 피리 소리에 넋을 잃은 듯 했다. 이래서 그가 피리를 불면서 거닐던 거리를 월명리(月明里)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도 월명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달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밝기를 더했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월명사는 피리의 명수로서 전설의 주인공이였지만 이름 높은 향가(鄕歌)의 작가이기도 했다.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러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나타낸 신라의 독특한 시가(詩歌)의 한 형태이며 모든 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신라인의 주체성의 작용을 이런 방면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월명사가 남긴 작품으로서는 '도솔가(兜?歌)'와 '제망매가(祭亡?歌)'의 두 수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향가작가로서도 그는 전설의 주인공이였다. 월명사로 하여금 향가작가로서도 전설의 주인공으로 만든 경위는 다음과 같다. 경덕왕(경덕왕) 19년 4월 초하루의 일인데 태양이 둘 나타나서 열흘이 되어도 그 현상이 사라지지 않으니 백성들이 겁을 먹고 생업에 종사할 용기가 없어졌다. 일관(日官)이 점을 치고 천기도 살핀 결과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중을 청해서 꽃을 뿌리고 공덕을 드리면 이 불길한 현상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는 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조원전(朝元殿)에 정결한 제단을 마련하고 청양루(靑陽樓)에 나아가서 인연 있는 중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 때 마침 월명사가 지나갔다. 왕은 그를 불러들여 제단에 나아가 노래를 지어 제를 드리도록 명하였다. 명령을 받은 월명사는 "신승(臣僧)은 다만 화랑의 한 사람으로 향가를 조금 알뿐이지 제를 올리는데 필요한 불교의 노래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를 못합니다."하고 사양을 했다. 그러나 왕은‚ "점에 의하여 그대가 인연 있는 중으로 선정되었으니 비록 향가라도 상관없으니 제를 올리도록 하라."고 거듭 명령하였다. 이래서 지은 향가가 도솔가(兜?歌)인데 이상하게도 월명사가 이 도솔가를 부르고 제를 올리니 당장에 태양의 괴변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월명사의 지극한 정성이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그 괴변을 달래준 것이다. 이 일은 온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왕은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월명사의 작품으로서는 도솔가 외에 '제망매가(祭亡?歌)'라는 또 한 수의 향가가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도 신기한 전설이 따르고 있다. 월명사에게 한 누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누이를 위해 제를 올리는데 향가를 지어 제사지내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신주에 향가를 적인 지전(紙錢)을 높이 불어 올려 극락세계가 있는 서쪽 하늘로 사라지게 하고만 것이다. 월명사는 피리를 불어서는 가는 달의 걸음마저도 멈추게 했고‚ 향가를 지어서는 두 번이나 기적을 나타내게 했다. 피리와 향가‚ 그리고 화랑의 무리에 적(籍)을 둔 중…… 얼마나 멋진 일이냐‚ 신라의 그 찬란한 문화는 바로 이런 곳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것이다. 그래서 화랑도를 신선 또는 풍유도라고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명사는 신라가 통일되고 문화가 전성시대에 들어가는 35대 경덕왕 때의 사람이다.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스님이였던 능준대사(能俊?師)의 문인이었으며 사천왕사(四??寺)에 살고 있었다. 본명이 무엇이였는지는 전하지 않고 월명사라고만 알려졌다. 그가 월명사라고 불리게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피리의 명수였는데 달밝은 밤에 피리를 불고 사천왕사의 앞길을 지나가면 하늘의 달도 걸음을 멈추고 피리 소리에 넋을 잃은 듯 했다. 이래서 그가 피리를 불면서 거닐던 거리를 월명리(月明里)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도 월명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달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밝기를 더했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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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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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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