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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익‚상필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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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상익‚상필형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상익‚상필형제 호 : /소헌‚자형/아헌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자 형제는 벽진 이씨‚ 동지중추부사 흥선의 아들들인데 출생 연대는 미상이다. 형 상익은 호를 소헌이라 했고 아우 상필은 자가 자형‚ 호는 아헌이었다. 두 사람이 다 신독재 김집 문하에서 수업하여 경학에 밝았고 특히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할 때는 형제가 서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써 아버지의 생명을 건지는가 하면‚ 그 어머니가 앓아 누웠을 때는 그 대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짐작‚ 약을 드려 낫게 한 효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어버이 생각에 싸서 집에 가져와 봉양하였으며 길이 멀어 가져 오기 어려우면 차마 먹지 못한 효심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이들의 효성을 가상히 여겨 다른 형제들보다도 더 많은 논밭과 종을 나누어 주었을 때도‚ "사람이 할 도리를 하고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하여 속으론 아버지의 처사에 불복하였지만 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무말도 아니하더니‚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로 인해 형제가 차별 받을 수는 없다." 하고‚ 전답 문권(문권 : 논밭의 문서)를 찢어버리고 여러 형제와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1662(현종 2)년 조정에 이들의 장한 효행이 알려져 부모를 봉양하랍시는 백미(쌀)가 상으로 내려져 향토민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형 상익은 작고하여 묘소는 이아(감천면 금송동)에 썼다. 1707(숙종 33)년 상익에겐 호조좌랑‚ 상필에겐 승훈랑 공조좌랑이 특별히 증직되고 복호가 내려져 갸륵한 이들 효자의 효심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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