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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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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영근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영근 호 : 경무/쌍계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영천 상세설명 자는 경무(警務) 호는 쌍계(雙 )이고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고려 훈신(勳臣) 영양군 대영의 후손이며‚ 단종 복위 운동의 충신 충장공 이대전 선생의 방손이 된다. 영천의 서쪽 끝에 남향으로 나직하게 둘러싼 산아래 있는 쌍계마을은 선생의 고향마을이며‚ 팔공산에서 흐르는 물과 보현산에서 흐르는 물이 그 마을 앞에서 합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선생 또한 이를 스스로의 호로 삼았던 것이다. 쌍계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질이 영특하고 기절(套節)이 뛰어 났으며 8세 때 벌써 경사(京司)를 통달하였다. 15세에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예를 가출수 있었고 부친의 병환에는 갖은 치성으로 구환을 다하였다고 한다. 또한 계모를 섬김에 있어서 자기를 낳은 어머니와 같이 공경하였고 아우와도 우애가 독실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화평하게 생활하는 마을에 왜구의 무리가 1592년에 대거 침략을 감행해 왔으니 이른바 임진왜란이 그것이였다. 선생은 황습히 부모를 모시고 집안 식구들과 팔공산에 들어가 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이 함락하고 선조대왕이 의주로 파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생의 부친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백성을 위하여 나아가 싸울때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국난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멸하는 일은 의당히 수행할 국민의 도리이며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영광된일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선생은 본래 자신이 취할 뜻이였으나 말씀이 계시니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고 즉시 행장을 챙겨 나가면서 부모님을 잘 봉양할 겄과 자식을 잘 키울 것을 부인에게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이 때에 17세되던 아우 영간(零簡)도 함께 나섰다. 학봉(學?) 김문충공이 초유사(招諭使)로 있으면서 사유를 자세히 임금에게 아뢰어 준례에 따라 포증(?證)하고 후손도 돌보게 하였다. 이 때 선생은 한성판관(韓城判官)에 추증되었다. 한편 고향의 인사들은 고천서원에 추증되었다. 한 쌍계선생은 그 윗대 선조인 남곡(南曲)석지(石地)와 서파(庶?) 안유(安裕)와 함계 쌍계의 구인사(九 社)에 배향되어 있기도 한다. 참으로 선생께서는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충성과 효도를 함께 갖추어 행하신 본보기오. 경주 전투에서 함께 순절하신 16의사와 그리고 무명의 많은 의병들과 함께 이나라 청사에 길이 빛날 영원한 한국의 청년상이라고 할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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