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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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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임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임용 호 : 종식/월호 활동시기 : 근대이후 상세설명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종식(鍾植)‚ 호는 월호(月湖)이다. 그는 항일 운동을 할 때 본이름(本名)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字)를 사용한 까닭에 종식(鍾植)으로 알려지고 있다. 1891년 고아면 괴평동에서 출생하니 자질(資質)이 특출하여 어릴때부터 사람됨이 남달랐다고 한다. 후에 대구계성학교(?邱啓聖學校)에 입학하여 기독교(基督敎)의 교인이 되고‚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칠곡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직생활을 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직장을 옮겨 4년간 근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날 때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西門市場) 장날을 기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김수길‚ 이영옥‚ 김삼도 등과 같이 기독교인을 중심으로한 시민남녀(市民男?)가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에 참가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일제(日帝)의 무력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동지가 투옥(投?)되었다. 이에 선생은 투쟁 방법을 전환하여 여러 동지와 모의(謀議)하여「조국의 독립은 눈앞에 있으니 한민족(漢民族)은 궐기하라」는 내용의 경고문(警告文) 2백장을 등사하여 배부하였으며‚ 아울러 상인(商人)들에게는 철시(撤市)와 폐점(閉店) 할 것을 종용하고 일본인들과의 상거래를 즉시 중지하라는 경고장을 뿌렸다. 또‚「생명과 감옥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등 취지문(趣旨文) 3백부를 대구시내에 배포하고‚ 철시를 하지 않고 계속 장사를 하는 집은 불을 지르겠다」는 경고장을 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만세운동 때 「투옥(投?)된 동포를 석방하라」는 경고문을 대구경찰서장 「시라이 요시사부로우」에게 보내고‚ 「만약 이에 불응할 때에는 시기를 봐서 암살(暗殺)하겠다」는 내용도 전했다. 또한 자제회(自制會)를 조직하고 대구 일본중추원 참의요 친일파인 박중양에게「우리의 뜻에 응하지 않을때는 암살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내는 한편 한국인 관리에 대하여는「사직하라」는 권고문을 전달하였다. 다시「우리 동포는 총궐기하고 한국인 관리는 각성하라」는 전단 3백부를 배포하고 만주(滿?)에서 군사교육을 시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사관생도(士官生徒)모집과 이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동하던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심을 거쳐 2심에서 3년 형을 선고 받고 투옥 되었다. 형기를 마치고 1929년 광주(光州)학생 봉기(蜂起)에 대한 뜻을 연결시켜 부산 조선방직공의 직공(職工) 수천명을 선동하여 동맹파업(同盟罷業)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하던중 광복을 맞이 하였다. 1960년 3월 1일 건국공로(建國功勞) 대통령표창(제34963호)를 수상한바 있으며 1975년 10월 17일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경북독립운동실록·선산군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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