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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장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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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장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장손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임진년 4월 21일에 경주성도 왜병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거의 전투다운 전투도 없이 그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경주성을 점령한 것이다. 왜병들은 무인지경(無人之境)을 달리다 시피 서울로 향해 쳐들어 갔다. 경주는 이러한 왜군들에게는 보급기지로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상당한 수의 수비병을 남기고 있었다. 경주에서 후퇴한 우리 군대는 안강에 본부를 두고 정세를 살피고 있었는데 이 때 반가운 승리의 소식이 들어왔다. 그것은 영천성을 수복했다는 소식이었다. 박진은 관군과 의병을 경주와 언양의 중간에 있는 계연(노곡)에 총집결시키고 군대를 재편성했다. 영천성 수복에 공훈을 세운 의병 5천명을 직접 박진의 지휘하에 두기 위해서 의병대장 권응수를 군관으로 취급하는 결과가 되어 김성일로부터 장계(狀啓)로서 공박을 당했다. 우리 군대는 한밤중에 행동을 개시하여 40리를 행군한 뒤 이른 새벽에 경주성에 육박했다. 박진은 먼저 민가에 불을 놓게 하고 하늘을 찌르는 불꽃을 이용하여 일시에 공격을 개시했다. 왜병들도 여기 맞서 싸우니 경주성은 혈전의 장소로 화했다. 그러나 박진은 작전에서 실수를 범했다. 적의 사정에 너무나 어두웠던 것이다. 왜병들은 언양에 큰 병역을 대비시켰다가 우리 군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싸움이 한창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갑자기 우리 후면에 공격을 퍼부었다. 예기치 못했던 왜병의 공격에 박진의 본군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때의 병장 정세아는 서문을 공격하였는데 적의 중위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아들 의번은 적의 포위망 뚫고 세 번이나 적중에 들어가 그의 부친을 구출했으나 자신은 몸에 수없이 부상을 당해서 결국 적중에서 순절했다. 우리 군사는 본부로 철수해야 했다. 적이 승리에 도취하고 있을 때 다시 공격을 해야 한다. 이번의 경주성 공격의 지휘관은 경주판관 박의장(朴毅長)이 맡게 되었다. 그는 1차 경주성 전투이래 줄곧 전투의 주역을 담당했다. 이 때에 박의장을 고무시키는 일이 생겼다. 그의 휘하에 화포공으로 일하던 이장손이 굉장한 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수박같은 쇠로 된 원구안에 날카로운 여러 쇠붙이와 화약을 넣어서 어떤 자극만 주면 원구 속에서 인화되어 터지게 되는데 원구 속의 화약 철편 원구의 파편 등이 사방으로 튀어서 큰 피해를 주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을 대완구포(?碗口砲)로서 쏘면 오륙백보(五六百步)를 날아가서 땅에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조금 후에 폭발하는 것이다. 박의장은 이 신무기에 비격진천뢰(飛擊震?雷)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것으로 왜적을 치고 경주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왜적에게 패한 원인의 하나는‚ 그들이 조총(鳥銃)이라는 우수한 무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과연 조총은 큰 힘을 발휘했다. 조총은 우리 병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신무기 비격진천뢰를 갖게된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우리 군사를 9월 7일 야음을 이용해서 행동을 개시했다. 안강을 출발한 공격군은 경주성 북쪽에 이르러 비격진천뢰를 연달아 성안으로 쐈다. 포탄은 오륙백보를 날아 성중의 객사 마당에 큰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조선군의 공격에 긴장하고 있던 왜병들은 원구가 떨어진 곳에 모여 들었다. 그 순간 굉음을 울리면서 포탄이 터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니 죽는 자‚ 부상당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다. 왜병들이 정신을 잃고 있는데 제2‚ 제3의 비격진천뢰가 여기 저기 떨어져서 왜병을 살상하니 삽시간에 성중은 수라장이 되었다. 이 틈을 놓칠세라 우리 군사들이 총공격을 감행하니 공포에 질린 왜병들은 저항도 못하고 새벽에는 총퇴각을 개시하여 서생포(西生?)로 도망쳤다. 성중에는 비격진천뢰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왜병 수백명이 버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군량미 만여석(萬餘石)을 압수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귀중한 전리품이었다. 경주성 탈환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관계 장수에게 상을 내렸으며 판관 박의장도 경주 부윤에 오르게 된다. 경주성 전투에 참가했던 왜병들은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겁을 먹고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서 마치 귀신의 물건처럼 두려워 했다. 비격진천뢰를 개발한 이장손은 천한 화포공이었으나‚ 어떠한 양반보다도 국록을 먹는 사대부보다도 훌륭한 일을 했고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데 이바지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저력이며 문화 민족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갈고 다듬었는 민족혼과 문화적인 자질이 있기 때문이며‚ 절박한 민족의 수난에 그것이 발휘된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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