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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임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임기 호 : /수호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공은 개령인 군수 임제광의 서자로 태어났다. 호를 수호자라 했는데 일찍이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나 당시의 사회제도에 얽매어 관계 진출이 빠르진 못했다. 천성이 영민하고 지인지감의 식견이 높아 남의 존경을 받았으며 세상을 경륜할 만한 그릇이었으나 초기는 불우한 처지였다. 특히 외교술에 능하여 초기는 백의(벼슬없이)로 명나라에 드나들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고 이문학관(역관)이란 중인의 말직으로 정사 김수를 따라 명나라에 들어가 외교술을 발휘하는가 하면 1584(선조 17)년 종계 변무 주청사 황정욱을 따라가서는 종계를 변무<명나라 태조 실록과 대명회전에 조선의 이태조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되어 그것을 바로 잡으려 주청하던일>함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공은 실상 백의로 여섯 번이나 명나라를 오가며 숨은 외교관으로 소임을 다했던 것이다. 이 공으로 인하여 서자로서는 파격적인 당산관에 오를 수 있었고 선조는‚ "임기의 자손은 대대로 천역을 면하게 하라!" 는‚ 어서를 하사하였으나 임진왜란에 어서를 잃어버렸다 한다. 공은 이뿐 아니라‚ 자치통감을 두주(본문의 머리에 다는 주석)한 바 있으며 전등신화(당나라 구우의 작으로‚ 우리의 김시습이 낸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에도 영향을 준 소설)을 구해(자구를 해석함)하여 세상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소설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지대하였다. 그러나‚ 공의 훌륭한 점은 조선혼에 살다간 분이란 점이다. 임진란이 났을 때는 공의 나이 80이라 촌노 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적이 온다고 어디가 피하랴! 조상이 산 이 땅은 나갔다가도 찾아올 땅이다." 하고 인근 산에 숨어 있다가 적에게 사로잡힌 바 되었다. 임란 당시 개령은 일본 후속군의 총집결지로서 제 딴엔 인심을 수습한답시고 명망 높은 선비나 관료를 사로잡으면 갖은 수단을 다하여 저들에게 동조할 것을 종용했다 한다. 그러나‚ 공은‚ "너희에게 빌붙을 일이면 숨지도 않았을 것이며‚ 목숨이 두려웠으면 이 땅에 숨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들의 회유나 강요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적들은 그 강경하고 당당한 모습에 기가 질려 더 이상 참을 수 없자 공을 칼로 치고 말았다. 이때 옆에 있던 부인이 공의 피투성이 된 몸을 껴안고‚ "이놈들아‚ 내 또한 죽을 자리를 얻었다!" 하고‚ 적들의 무도함을 꾸짖자 그들은 무참하게 부인마저 베고 말았다. 이 장렬한 임기 내외의 죽음은 순식간에 피난민의 입을 통해 번졌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한층 고조되기만 하였다. 그 아들 우춘이 이를 갈며 원수갚을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정유재란이 터졌다. 공은 상주 갑장산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또 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공은 끌려가며 아버지 산소가 가까이 오자‚ "너희가 나를 죽이는 일은 간단하다. 나는 임기의 아들임을 너희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죽기 전에 소원이 하나 있다." 왜적이 그 소원이 무어냐고 묻자‚ "천하의 보물을 사장시키고 죽는 것은 내가 할 짓이 못 된다는 점이다."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공은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입은 떼지 않았다. 공은 적을 유인하여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까지 갔다. 아버지의 비석 앞에 가 엄숙히 서서‚ "너희의 본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고 눈을 부릅뜨자 적들은 미처 말뜻을 못 깨닫고 어리둥절했다. "천하에 보물이 있으면 어찌 너희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에게 주랴! 자‚ 어서 내 목을 쳐라. 내 이미 죽을 곳을 얻은 것이다." 공은 비석을 껴안고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그제야 속은 줄 안 적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공의 소매를 마구 끌었다. 죽여도 곱게 죽이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공은 일이 이에 이르자‚ 자결을 결심하고 차고 있던 장도를 꺼내어 목을 찌르고 말았다. 부인 홍씨도 남편의 시체를 껴안고‚ "하늘이 무서운 줄 알라!" 적을 꾸짖음과 동시에 자결하니 마침 왜적도 넋이 빠진 채 감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한다. 나랏일을 볼 때는 재능을 대해 백의를 탓하지 않았으며‚ 학문에 있어서는 실용성에 대담하였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갔다. 한 집안에서 충신 효자·열부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삼강의 표본이었다. 퇴계도 공의 만장에서‚ "국가 사직을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았고 문장은 백세의 스승이었다." 고 공을 애도하고 있다. 전후에 나라에서 공에게는 동지중추부사를 증직하고 광국공신일등에 올렸으며 아들 내외에게는 정려를 내려 그 높은 충열을 찬양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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