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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장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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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장진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장진두 활동시기 : 근대이후 상세설명 1857년 10월 12일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체격이 크고 동작이 민첩하여 장사의 기풍이 있었다. 때는 청일전쟁이 끝난 뒤 일본의 세력이 물밀 듯이 들어와 명성황후 민비를 시해하고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하여 양력을 사용하라‚ 상투를 깎아라‚ 색옷을 입어라 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새로운 정령을 연발하니 이에 분노해서 경향각지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여야 한다고 아우성 치던 때에 울진에서도 의병을 일으켜 유진소를 설치하고 주병헌을 유진장으로 추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 하였다. 1882년 음력 정월초에 일본 어선 5척이 우리나라 관원의 허가도 없이 임의로 죽변항에 들어와 해삼잡이를 하고 있었다. 유진장의 명을 받은 중장군 최재린이 포병 50명을 데리고 죽변 대밭속에서 복병하고 있을 때 북풍이 몹시 불어 일본 어부들은 해삼잡이를 중지하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배를 물가에 당겨 올리고 있었다. 숨어있던 포병들은 5척의 배가운데 3척이 상륙되는 것을 보고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31명의 왜인을 사살하였다. 의병에 가담한 장진두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이 싸움에서 가장 민첩하고 용감하게 잘 싸우므로 보는 이들은 경탄해마지 않았다. 장진두는 이 싸움에서 무공을 날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어 27세의 젊은 나이로 중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다 죽은 줄만 알았던 일본인 가운데 한명이 배속에 숨어 있다가 밤중에 도주하여 부산에 있는 일본 군함에 보고하니 20여일이 지난 정월 30일에 일본 군함 1척이 죽변 앞바다에 와서 함포사격을 가하면서 수개의 소대병력을 상륙시켜 무차별 살인과 방화로 수라장을 이루었다. 이 사건을 소위 울진의 병신년왜란 이라한다. 그들은 묻어둔 일인의 시체를 파내어 목욕까지 시키고 사진을 찍은 후 군함에 싣고 가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장진두 의병이 일본 사람을 가장 많이 죽였다 하여 원수로 생각하고 일인 5명이 한국인 통역을 앞세워 고목리 장진두 집을 찾아오니 숨어있던 장진두는 산으로 피신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묻거던 못보았다"하라고 당부하고는 산에 올라가 나무하는 마을 사람들과 옷을 바꾸어 입고 나무꾼으로 가장하여 가던 길을 도로 내려 오다가 일본군인을 만나 그중 한놈을 때려 눕히고 총과 실탄을 빼앗아 사격을 가하니 눈깜짝할 사이에 왜병이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그 후 강원도 의병대장 이강연 장군 휘하에서 중장군이 되어 일본 헌병과 일본의 앞잡이로 역적행위를 하는 한국사람을 샅샅이 찾아 죽이니‚ 별명이 "호랑이 중장군" 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는 계속 의병활동을 하다가 삼척군 하장면 산미원에서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39세를 일기로 전사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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