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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가 새겨진 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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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관람후기(0)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 한자명칭 「癸酉」銘三尊千佛碑像 국적/시대 한국(韓國)-통일신라(統一新羅) <673년> 출토지 충청남도(忠?南道)-연기군(燕岐郡) 전동면(全東面) 다방리(太方里) 비암사(碑巖寺)/현‚ 세종시(世宗市) 전의면(全義面) 비암사길(碑巖寺길) 재질 석(石) 크기 높이 91.0cm 지정구분 국보(國寶) 108 호 소장품번호 신수(新收)-000549-000 공유하기 충남 연기(燕岐)지방(현 세종시)에 전하는 총 7구의 불비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크다. 받침돌과 몸체는 하나의 돌로‚ 지붕은 별도의 돌로 이루어졌다. 앞면 중앙에는 삼존불을 고부조로 조각하였고‚ 위쪽에는 지붕돌에 이르기까지 작은 천불상(千佛像)을 새겨 넣었다. 그 아래로 삼존상의 좌우에는 각 4줄씩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명문의 내용은 계유년(癸酉年) 4월 15일에 미차내(彌次乃)‚ 진모씨 대사(眞牟氏 ?舍) 등의 향도(香徒) 250명이 국왕과 7세 부모(七世父母)와 중생을 위하여 석가(또는 아미타)와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조각의 양식적인 면에서 연기군 비암사(碑巖寺)에서 발견된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癸酉銘全氏阿彌陀三尊佛碑像)과 유사하여 거의 동시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문무왕文武? 13년(673)으로‚ 조성자도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과 같이 신라에 통합된 백제 유민으로 추정할 수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구 백제 지역에서 백제미술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던 사실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유형)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museum.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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