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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무 <당 고병의 「은자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다」(좌)> · 장굉 <도원동(우)>&sbquo;《오문장굉선생의 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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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용무 <당 고병의 「은자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다」(좌)> · 장굉 <도원동(우)>&sbquo;《오문장굉선생의 화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화첩은 표제(表題)에 의해 장굉(張宏)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장굉(字 君度‚ 號 鶴澗)은 명대 명말 오파(吳?‚ 쑤저우의 옛 지명 ‘오吳’)의 화가로 장쑤 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출신이며 오파의 창시자인 심주(沈周‚ 1427~1509)의 화법을 따라서 문인화의 품격을 계승했다. 특히 산수화에 뛰어난 역량을 보였으며 명승실경도를 남겼다. 이 첩은 장굉의 그림 다섯 면과 신용무(申用懋)의 글 다섯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과 관련된 시를 쓴 신용무(申用懋‚ 字 敬中)는 장굉과 같은 지역 출신으로 명말 청초 만력 연간에 주로 활동한 관리이자 학자로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장굉의 그림은 풍광이 뛰어나고 관련고사가 전해져서 전통적으로 문학의 소재로 다루어진 ‘도원동(桃源?)’‚ ‘취옹정(醉翁亭)’‚ ‘도리원(桃李園)’‚ ‘동정호(?庭湖)’‚ ‘전적벽(前赤壁)’을 그린 것이다. 일종의 명승도첩으로 볼 수 있는데‚ 장굉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명승유람이 성행하여 많은 명승실경도가 제작되었다. 심주도 《오문십이경책吳門十二景冊》 등 명승을 그려 화첩으로 꾸민 작품을 남겼다. 이 첩에 수록된 그림들은 화법이 고졸(古拙)한 점 역시 심주 화법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오문장굉선생의 화첩》의 제 2면인 신용무의 <당唐 고병高騈의 「은자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다訪隱者不遇」>와 제 1면인 장굉의  <도원동桃源?>이다.   신용무의 시와 인문 落花流水認?台 흐르는 물에 꽃이 지니 천태산?台山(저장 성에 있음)임을 알겠고 半醉閑吟獸自來 반 쯤 취해 한가롭게 웅얼거리면서 홀로 왔다네. ?愴仙翁何處去 슬픔에 젖어있는 선옹仙翁은 어디로 가는가. 滿庭紅杏碧桃開 뜨락에는 온통 붉은 살구꽃과 복사꽃이 피었다. 桃源. 도원. 印文 | 「?渚」‚ 「申用懋印」 장굉의 글과 인문 桃源?. 도원동. 印文 | 「君度」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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